[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폭싹 속았수다' 류성희, 최지혜 미술감독이 지난 촬영을 회상하며 의미를 전했다.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에서 태어난 '요망진 반항아' 애순(아이유 분)과 '팔불출 무쇠' 관식(박보검 분)의 모험 가득한 일생을 사계절로 풀어낸 넷플릭스 시리즈다.

"내 이야기, 동생 이야기, 울 엄마, 아빠 이야기, 시대 배경, 음악, 정서 무엇 하나 허투루가 없는 드라마~ 인생 띵작입니다"(유튜브 고기*******), "'폭싹 속았수다' 디테일 미쳤다 하나하나 의미 있는 포인트가 많아서 넘 즐거움.."(X icy***)과 같이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내며 4막 공개 이후에도 식지 않는 인기를 입증하고 있다.
넷플릭스 측은 8일 아이유, 박보검, 문소리, 박해준까지 믿고 보는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과 임상춘 작가의 빈틈없는 스토리텔링, 김원석 감독의 디테일을 살리는 연출력에 섬세한 손길로 몰입도를 높인 베테랑 제작진 일문일답을 공개했다.
다음은 '폭싹 속았수다' 류성희, 최지혜 미술감독 일문일답 전문
-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소감은?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한자리에 앉아 단숨에 끝까지 빠져들며 읽었습니다. 특히 이야기를 사계절로 나누어 서사를 풀어가는 방식이 강하게 인상에 남았고, 그 구조 덕분에 머릿속에 시각적인 이미지들이 또렷하게 떠올랐습니다. 감정들이 너무도 선명해서, 그 감정들을 어떻게 풍경화 할 수 있을지 계속해서 상상하며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장면마다 빛의 농도, 계절의 감각, 인물의 감정과 특성들이 겹겹이 덧입혀지며 자연스럽게 하나의 풍경이 떠올랐고, 그 상상은 지금 화면 위에 펼쳐진 결과물과도 아주 닮아있었습니다. 드물게도 시나리오 자체가 매우 시각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당시 이미 이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구현할 수 있을지 직감적으로 설계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미술감독으로서 가장 크게 다가왔던 것은 '시간'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였습니다. 단순한 시대의 재현을 넘어, 인물들의 감정과 기억으로서의 공간 — 어쩌면 사실성보다 더 중요한, 그 시절 그들의 감정이 반영된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이 작업은 시작되었습니다."
- '폭싹 속았수다'의 전반적인 프로덕션 디자인의 콘셉트 또는 주안점은?
"'폭싹 속았수다'는 단순히 하나의 사건을 그린 시대극이 아니라, 한 가족의 희로애락과 함께 한국 현대사 65년을 관통하는 여정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미술적으로도 시간, 공간, 인물이라는 세 가지 축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단순한 시대 재현에 그치지 않고 각 시대가 지닌 공간의 정서를 컬러, 패턴, 질감 등 미술적으로 활용 가능한 요소들로 풀어내려 했고 고증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또 현재의 시선에서도 세련되게 보일 수 있도록 디자인하면서, 젊은 세대가 시대극을 보며 또 다른 방식으로 공감할 수 있도록 시도한 점도 중요한 포인트였습니다. 김원석 감독님은 이 작품의 미술을 단순한 시대 재현의 수단으로 보지 않으시고 대본에 담긴 정서와 아름다움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데 큰 가치를 두셨습니다. 작은 소품 하나하나, 인물의 글씨체 하나까지도 고증과 디테일을 직접 꼼꼼히 챙기고 섬세하게 확인하고 컨펌하셨고, 미술 회의 현장뿐 아니라 촬영 중간에도 임상춘 작가님께 직접 전화해 인물의 감정과 미술적 정서를 함께 조율하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런 적극적인 소통이 저에게는 굉장히 새롭고 멋지게 다가왔고, 함께 만들어간다는 감각이 있어 더 뜻깊은 경험으로 남아 있습니다."

- 긴 세월, 시대를 시청자에게 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이 시대의 제주와 서울을 촬영할 수 있는 장소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본에 등장하는 다양한 공간들을 소화할 수 있는 세트가 필요했고, 특히 주된 배경인 제주도의 어촌 마을과 제주 시내 거리를 구현하는 작업은 세트의 규모가 컸던 만큼 많은 고민이 필요했습니다. 부지를 찾는 것부터가 큰 과제였고, 로케이션 섭외팀이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안동에서 겨우 적절한 부지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대본 속 장소들과 거리감을 모두 담아내기 위해, 하나의 세트를 시대에 따라 여러 번 전환하여 활용하는 계획이 필수적이었고, 디자인 단계부터 동일한 공간이 시대의 변화나 인물의 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보일 수 있도록 치밀하게 설계했습니다. 만들어진 세트를 단지 고정된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사와 감정의 흐름에 따라 공간을 전환하고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운용해야 했고, 같은 장소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도록, 색, 재질, 소품, 사용감 등을 섬세하게 조율해 나갔습니다. 결국 이 작업은 공간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시간의 변화와 인물의 흔적이 축적된 장소로 어떻게 설득력을 가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 시대의 디테일을 보여주는 플래카드나 전단지 등 시대를 구현하기 위한 소품들을 어떻게 만들었나?
"'폭싹 속았수다'는 시대 자체가 '인물'이자 '서사'의 일부였기 때문에 시대를 단번에 체감할 수 있는 소품의 역할이 정말 중요했습니다. 시대적 디테일이 인물의 감정이나 상황을 설명하는 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런 소품 하나하나에 굉장히 많은 고민과 노력을 담았습니다. 플래카드나 전단지, 포스터 같은 것들도 당시의 문체, 폰트, 색감, 레이아웃까지 고증해서 미술팀과 소품팀이 협업해 제작했고, 출력 및 에이징 작업까지 하나하나 손으로 작업해 만들어 냈습니다. 이 작업은 단순히 '예쁘게 꾸미는 것'을 넘어서 그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의 감정과 기억을 시각적으로 되살리는 작업이었고, 미술팀과 소품팀 모두 정말 애정을 가지고 치열하게 작업에 임해주셨습니다. 화면에 스쳐 지나가는 한 장의 포스터, 한 장의 신문이지만 그 안엔 수많은 시간과 손길이 담겨 있다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VFX(시각효과, CG)팀과 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안동에 지은 어촌 마을 세트의 핵심은 항구를 짓고 배를 띄우는 물리적 공간을 구현하는 일이었고, 동시에 포구의 바다를 CG로 자연스럽게 확장해 내는 작업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CG팀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CG가 실제 공간과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도록 조율하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특히 이번처럼 리얼리티가 강조되는 작품의 CG는 조금만 어색해도 많은 이들의 눈에 쉽게 거슬릴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섬세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작업이 이뤄져야 했습니다. 실제로 이번 작품에는 티나지 않게 사용된 CG 작업이 상당히 많았고, 90년대 배경의 다양한 로케이션에서는 현재의 흔적들을 지우고 그 시대에 어울리는 디테일들을 더해가는 방식으로 고증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예를 들어,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 위 배의 장면은 특수효과팀과 CG팀의 정교한 합이 만들어낸 장면이었고, '금명'이와 '영범'이가 군 휴가 중 헤어지는 기차역 장면도 인물과 배경을 따로 촬영해 합성한 컷인데, 알고 보면 CG지만 너무 자연스러워서 전혀 티가 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감쪽같은 디테일들이 이번 작업의 숨은 매력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 미술작업으로 보이지만 그 뒤에는 타팀들과의 협업이 많았습니다."
- 고증과 창조, 세트와 로케이션, 오픈 세트 등을 어떻게 조화롭게 작업했나?
"이번 작업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고증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인물의 서사와 감정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리적 배경, 시대적 배경을 넘어, 감정으로서의 풍경이 될 수 있는가 — 그 질문이 디자인의 중심에 놓여 있었습니다. 사실적인 배경을 전달하기 위해 로케이션을 많이 사용하고 싶었지만,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었고, 미술적인 드레싱 없이 그대로 사용한 장소는 '금명'이가 결혼한 성당, '관식'이가 건강검진을 받은 병원 정도였습니다. 고증과 리얼리티는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항상 세심하게 신경 써야 했지만, 이 시나리오처럼 감정이 계절의 흐름처럼 살아 있는 이야기에서는 때로는 인상파나 표현주의 회화처럼, 기억이 사실성을 압도하는 순간들이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사춘기나 첫사랑을 떠올릴 때, 공간의 디테일보다는 눈부신 빛, 조명의 감도, 공간의 색감, 냄새처럼 감각적인 기억이 더 선명한 것처럼요. 그래서 '애순'과 '관식'의 인생에서 기억으로 남을 법한 공간들 — 예를 들어 그들의 청춘, 가출했던 도시, 짐을 통째로 도둑질당하고 경찰서까지 갔던 청춘의 도시 부산은 마치 강렬한 꿈처럼 기억될 수 있도록 상정했고, 조명, 벽지, 의상 컬러와 패턴을 사용해 가장 몽환적인 색감으로 접근했습니다. 또 그들의 첫 신혼방, 첫 셋방이었던 도동리 상회 방 같은 공간은 한 칸짜리 작은 방이지만 그들의 감정처럼 사랑스럽고 생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디자인 요소들을 구성했습니다. 그들의 공간뿐 아니라 등장인물 모두의 공간이 소박하지만 초라하지 않게 보이기를 바랐고, 그 점을 전반적인 디자인의 정서로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 공간별로 콘셉트와 특징에 대해서 설명해준다면?
"이 작품처럼 시대가 빠르게 흐르는 작품에서 각각의 공간을 디자인할 때는 공간이 인물들의 상황을 직관적으로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미술팀은 항상 대본에 표현되지 않은 부분까지 각 공간만의 스토리를 부여하며 작업해야 했는데, '이 캐릭터가 여기서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를 상상하면서 디자인을 풀어갔습니다. 예를 들어 '애순'이 양배추를 팔던 장터는 시간이 흐르며 생선과 채소를 파는 시장으로 — 또다시 '애순'이 좌판을 펼치는 공간으로 변화합니다. 한 인물의 생존기이자 시대의 변화까지 상징하는 장소였기에 세트 구성 자체부터 변화를 고려해 설계했고, 시대마다 간판, 좌판의 재질, 도로 바닥 등 디테일을 달리해 표현했습니다. '휘앙새 다방'은 '애순'이 '상길'과 맞선을 보던 공간인데 시간이 흐른 뒤 '순이네 세 이모네'으로 바뀝니다. 이 공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과거의 10대 '애순'이 맞선을 보던 그 자리에서 현재의 40대 '애순'이 숟가락을 붙잡아 지지해 주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상길'이와 맞선 보던 공간도 어떻게 보면 젊은 시절의 추억이기 때문에 현실과 생존의 공간인 '순이네 세 이모네'보다 화사한 색상들을 사용했습니다. 하나의 세트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표현하는 방식이 필요했기에 그 두 시절의 정서가 자연스럽게 맞닿을 수 있도록 공간의 색과 질감을 조율하며 작업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봉천동 '깐느극장' 장면은 총 네 개의 서로 다른 장소에서 촬영해 하나의 공간처럼 구성한 사례입니다. 외부는 합천 세트장, 로비와 상영관은 광주, 영사실은 종로, 매표소 내부는 실내 세트에서 각각 촬영했고, 짧은 장면이지만 각 장소의 시대적 분위기를 살려 조화롭게 이어지도록 연출했습니다. '금은동이네'는 충남 당진에 있는 비어 있는 건물에서 촬영했습니다. 드라마 설정처럼 정말 허허벌판에 건물 하나만 덩그러니 놓인 장소였고, 내부는 거의 세트를 짓다시피 하며 정성껏 공간을 구성했습니다. 이후 금은동 가족이 장사를 시작하며 점점 잘되고, 주변에도 가게가 하나둘 들어서는 흐름까지 보여줘야 했기에 짧은 시간 안에 변화의 리듬을 구현해야 했고, 특히 추운 겨울의 촬영이라 미술팀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던 공간이기도 합니다."

- 가장 공을 많이 들인 공간이나, 기억에 남는 공간이 있다면?
"제주도의 어촌 마을을 짓는 작업은 미술팀에게 가장 도전적인 일이었습니다. 제주 전통 가옥은 물론이고, 중산간 지역의 지형, 포구, 토양, 식생까지 — 이 모든 것을 육지에 구현해야 했기 때문에 상당한 예산과 인력, 그리고 정교한 계획이 필요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공간이 자연스럽고 '진짜처럼' 느껴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습니다. 세트 팀은 수백 톤의 흙을 쏟아부어 지형을 만들었고, 제주도에서 육지 반입이 불가능한 현무암 대신 베트남과 철원에서 공수한 현무암으로 제주 돌담을 쌓았으며 조형적으로 더 강조되거나 부족한 부분은 스티로폼과 폼 등을 이용해 하나하나 제작하고 채색해 채워 넣었습니다. 또 남해 지역과 제주도의 식생들을 공수해 자연스럽게 배치했고, 미술 소품팀의 정성 어린 손길들이 더해져 마을에 진짜 숨을 불어넣을 수 있었습니다. 세트뿐 아니라 로케이션 공간 하나하나에도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예를 들어, 90년대 서울 거리 장면은 실제로 전주와 군산의 거리 전체를 세팅해 촬영했습니다. 시대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상점 구성부터 간판, 그래픽, 세팅 소품들까지 디테일하게 배치해 시대의 감각을 구성했고, 80~90년대 장면들에서는 현장에 남아 있는 현대적인 흔적들을 티나지 않게 지우고 덮는 작업에도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습니다."
- 류성희 미술감독님이 작업한 대표적인 '국제시장'과 '변호인' 등의 시대극 작업들과 달랐던 점이 있다면?
"'국제시장'과 '변호인' 모두 제(류성희 미술감독)가 직접 작업했던 시대극이기 때문에, 단순히 비교라기보다는 다른 결의 접근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두 작품 모두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보다 역사적 서사의 맥락을 시각적으로 재현해야 하는 작업이었고, 관객에게 당대의 분위기와 사건을 보다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심이었습니다. 공간이 갖는 의미가 다분히 설명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폭싹 속았수다'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긴 하지만, 그 안의 인물들을 통해 시간을 상대적으로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서사였습니다. 어떤 특정 사건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내면을 통과한 시절들을 그려야 했기 때문에 공간 또한 훨씬 더 사적인 정서와 기억의 층위로 접근했습니다. 그 안에서 살아 있는 감정의 호흡 — 마치 누군가의 기억 속에 떠오르는 색감, 재질, 빛의 각도 같은 것들에 더 귀를 기울이며 만들었습니다."
- '폭싹 속았수다' 감상이나 보람에 대해 전한다면?
"'폭싹 속았수다'는 저희 미술팀 모두가 대본을 읽을 때부터 눈물을 흘리고, 진심을 담아 작업에 임했던 작품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장기간에 걸친 지난하고 물리적으로도 힘든 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탈자 한 명도 없이 끝을 맺었던 것 같습니다. 20대 젊은 후배들도 살아보지 못했던 시대의 그림을 관객에 가닿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무한한 애정을 담아 한 장면, 한 공간을 차곡차곡 만들어갔고, 다른 팀과의 협업, 연출과 배우분들의 노력으로 소중히 잘 완성된 것 같습니다. 특히 시청자분들께서 그 노력과 정성을 고스란히 느껴주시고, 따뜻한 반응으로 되돌려주신 것을 보며 팀 모두가 뿌듯함과 큰 보람을 함께 느꼈습니다. 완성된 드라마를 보고 나서도 이런 작품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정말 특별하고 아름다운 여정에 함께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박진영 기자(neat2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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