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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소설] 북으로 흐르는 강 <3> - 정찬주


조이뉴스24가 단편소설을 연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언제나 맑고 선명한 언어로 인간의 내면 이야기를 즐겨 들려주는 정찬주 작가가 이번에는 집요하고도 진득한 문장으로 지나간 시대의 아픔을 말해 줍니다. 소설에 담긴 비극은 분명 과거에 속한 것이지만 새로운 모습과 형태로, 아니 더욱 강고하게 현재를 지배하고 있기에 바로 오늘의 이야기 우리의 고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편집자]

봉옥은 서둘러 안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내가 낀 것같이 푸르스름하게 보이는 안골마을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지막해서 이름이 없는 야산에 꼬옥 감싸여 있었다. 저렇게 평화롭게 보이는 마을에 어찌해서 죽고 죽이는 광란의 회오리바람이 불었는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봉옥은 부러 큰길로 가지 않고 그늘진 샛길 쪽으로 갔다. 마을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은 데다 지금은 불타버리고 없는, 6·25 때 공회당으로 쓰였다는 우산 각이 있었던 터 앞을 지나기 위해서였다. 그곳도 역시 봉옥의 아버지와 인연이 있는 땅이었다. 그 터 가장 자리에는 봉옥의 아버지가 심었다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지금도 살아서 푸른 잎을 팔랑거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안골마을 아이들은 그 느티나무를 슬금슬금 피해서 다녔었다. 학교를 가거나 소를 몰고 갈 때도 그곳을 피해 먼 길을 돌아다녔다. 마치 느티나무에 낮도깨비가 숨어 있기라도 하듯 무섭고 두려워서 그랬던 것이다. 또 아이들은 그 느티나무를 꺼꾸리 나무라고도 부르곤 하였다. 그것은 아버지의 별명이 꺼꾸리였기 때문인데, 아버지는 여느 사람과 달라 이 세상에 나올 때 머리부터 나오지 않고 두 다리부터 나왔다고 해서 그런 별명의 놀림을 받곤 하였던 것이다.

"아부지, 봉옥이가 왔그만이라."

봉옥은 느티나무가 자신의 안부 인사를 아버지에게 전해 줄 것처럼 먼저 중얼거렸다. 느티나무는 뜻밖에도 잘 살아남아 있었다. 이제는 수많은 가지를 드리우고 있을 뿐 아니라 허리가 통통하게 굵어 있어 제법 늠름하기조차 하였다. 봉옥은 기어코 콧잔등이 시큰해짐을 느꼈다. 안골마을을 떠난 이십여 년의 세월이 물살처럼 밀려오는 것이었다.

죽은 남편은 봉옥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고작 나무 한 그루를 사기 위해 몇 백 평의 밭을 사야 하느냐고 불평을 하였었다. 밥상을 사이에 놓고 언쟁을 벌인 적도 있었다.

"아버님이 심근 나무가 무신 죄가 있당가요. 신경 쓰지 말란 말이시. 그깐 나무 하나 갖고 말이여. 밥 묵고 살기도 바뻐 죽겄는디."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겄소만 나무의 누명을 벗겨주고 싶어 그런당께요. 그 나무에 낮도깨비도 빨갱이귀신도 읎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지라. 지금 커가고 있는 마실 아그들한테는 말이요. 번 돈 어따 쓸려고 그러요."

"어허,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란 말이시. 안골마실 사람덜이 당신헌테 땅 팔 것 같소? 택도 읎는 소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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