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배우로서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이걸 알아봐주시니까 기분이 이상하다." 배우 이설은 '침범' 관련 인터뷰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시작부터 눈물을 글썽이더니 자신이 연기한 해영의 마음을 전하면서 울고 또 울었다. 연기 칭찬엔 고개를 푹 숙이고 손에 쥔 휴지로 눈물을 닦아내기 바빴다. 원래 눈물이 많은 편인가 했지만, 그건 아니란다. 본인도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건지 당황스럽다고. 그러면서 해영을 안쓰럽게 봐줬으면 좋겠다고 쉼 없이 진심을 피력했다. 그만큼 애정과 열정을 많이 담은 캐릭터와 작품이라는 것이 느껴져서, 배우가 더 예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더 좋은 작품에서 놀라운 연기를 보여줄 이설을 기대하게 된다.
지난 달 개봉된 '침범'(감독 김여정, 이정찬)은 기이한 행동을 하는 딸 소현(기소유)으로 인해 일상이 붕괴되고 있는 영은(곽선영)과 그로부터 20년 뒤 과거의 기억을 잃은 민(권유리)이 해영(이설)과 마주하며 벌어지는 균열을 그린 심리 파괴 스릴러다.
![배우 이설이 영화 '침범'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935엔터테인먼트]](https://image.inews24.com/v1/cd2e28a4101b58.jpg)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섹션을 비롯해 하와이국제영화제, 홍해국제영화제, 피렌체 한국영화제 등에 초청되어 개봉 전부터 큰 관심을 얻었다.
이설은 어릴 적 트라우마를 안겨준 사건 이후 사람을 믿지 않고 경계하는 민(권유리 분)의 일상에 갑자기 나타나 미묘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해영 역을 맡아 열연했다. 1막과 2막으로 분리되는 '침범'에서 권유리와 2막을 이끈 이설은 시종일관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겠다 싶은 해영을 탁월하게 연기해내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한다.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반전의 인물이지만, 다시 한번 인간의 본성과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다음은 이설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저는 민이가 소현일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해영은 필적할 어떤 상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엄청난 반전이었다. 시나리오를 보고 '재미있다,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 '침범'에 대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같다는 얘기를 했다. 어떤 지점에서 그렇다고 느꼈나?
"저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사랑의 모든 형태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티모시가 울 때 연인으로서도 있겠지만 정말 다양한 감정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침범'에도 부모의 사랑, 친구와의 사랑, 가족 간의 사랑이 있다. 또 모르는 사람이지만 호감이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지독한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침범'도 그런 영화라는 믿음이 있었다."
![배우 이설이 영화 '침범'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935엔터테인먼트]](https://image.inews24.com/v1/57fb23d218acc8.jpg)
- 해영은 어려서부터 사랑에 대한 결핍으로 인해 더욱 사랑을 갈구한 것으로 느껴졌는데, 이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하고 접근했나?
"제가 가장 먼저 생각했던 건 '얘는 진짜 사랑받고 싶어하는구나. 사랑에 미친 애'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민에게도 특별한 사랑을 느꼈고 질투도 했을 것 같다. 또 현경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소유욕에 가까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도 있다. 사람은 소유욕이 사랑인 줄 알기도 한다. 그것도 해영에게 크게 작용했을 것 같다. 제가 유기견 임시 보호를 한 적이 있다. 그 친구가 마침 제가 선물 받은 가죽 가방을 찢어 놨다. 가방끈이 다 끊어져 있더라. 너무 화가 나지만 이 아이에겐 화를 낼 수 없었다. 다 듣고 느끼다 보니 갑자기 엄청 움추러들더라. 그걸 보면서 해영도 영은이 자기를 무서워하고 분노와 증오가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을 것 같더라. 거기서 비롯된 삐뚤어진 소유욕이라든지, 사람에 대한 증오가 어린 나이부터 들끓어오면서 계속 폭주 기관차처럼 나가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됐다."
- 보는 것과 촬영 순서는 1막과 2막이 달랐다고 알고 있다. 어떻게 서사를 끌고 가려고 했나?
"제가 감독님들을 많이 괴롭혔다. 얘기를 시작하면 10시간 넘게 계속 아이디어를 던졌고 감독님이 걸러주시겠지 했다. 그렇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서 계속 캐릭터를 빌드업했다. 사이코패스 하면 생각날 법한 캐릭터들이 있는데, 저는 절대 어디서 본 것 같은 캐릭터를 만들고 싶지 않은 욕심이 있었다. 저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면서 감정적인 것을 많이 넣었다. 외로움, 절망, 분노, 질투 등의 감정을 해영 안에 넣고 싶어서 욕심을 많이 냈고, 그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다."
- 아이디어를 낸 장면을 꼽아준다면?
"민이 해영의 방을 몰래 뒤질 때 갑자기 스윽 나타나서 도둑고양이라고 하는 장면이 있는데, 언니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끌어안듯이 매달린다. 약간 삐뚤어진 것을 표현하고 싶어서 아이디어를 냈다. 다음 날 요리를 준비할 때 민에게 나만의 경고를 하고 싶더라. 칼로 계란말이를 자르는 설정이었는데, 위험한 장면이니 신동미 언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 장면을 찍었다. 저는 그 장면을 꽤 좋아한다."
![배우 이설이 영화 '침범'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935엔터테인먼트]](https://image.inews24.com/v1/ccdbc5d99d13b3.jpg)
- 지나치게 해맑고 선을 넘는 캐릭터다. 정체가 후반에 드러나지만, 그전에는 이를 숨기기 위해 계산적이거나 복합적인 면모가 보이는 캐릭터다. 그걸 어떤 식으로 접근해서 연기했나?
"유튜브에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이 심문받는 장면들이 많이 있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사실 여부는 제가 알 수 없지만 진짜 사람 좋고 매력적이고 친해지고 싶은 뭔가가 있다고 하더라. 그런 것을 참고하기도 했다. 혼자 20년 동안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침범도 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때마다 살아남기 위해 인기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학습해서 머리 좋게 써먹었지 않았을까. 영악하게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저는 귀여운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새끼들이 귀여운 건 살아남기 위한 생존본능이라는 말을 누군가가 해줬다. (해영도) 귀여운 걸 무기로 하는데, 속은 되게 음흉한 거다. 사람을 안심하게 해놓고 관찰하면서 어떻게 이용하지, 항상 생각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보이시한 스타일을 선택한 이유는?
"소년 같은 느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시안에도 짧은 머리가 있었는데 무조건 짧은 머리에 파마를 하고 싶었다. 핑크 니트도 입고 싶었다. 그렇게 혼자 현장에서 스타일링을 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해영이라면 동묘시장에서 사 온 가죽점퍼가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설정했다. 실장님께서 너무 찰떡같은 걸 다 구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전하고 싶다."
- 해영이가 민에게 집착하는 것이 있다고 했는데, 민의 남자친구에게 복수한 것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한 일이라는 설정인 건가?
"맞다. '언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나만 생각했다. 그래서 '너만 없어지면 된다'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해영은 민에게 정말 미묘한 사랑을 느꼈을 것 같다는 그 믿음도 있었다. 언니가 될 수도 있고 가족으로서도 있다. 사랑의 형태를 잘 모르는 애니까 오만가지 예민한 상황이 있지 않을까. 사춘기 때 우정과 사랑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했다."
- 민에게 동질감도 느꼈던 걸까?
"동질감도 있었을 거다. 자기가 한 번도 가지지 못한 것도 있었을 것이고, 내가 이만하면 사람들은 나에게 넘어와서 좋다고 하는데 민은 안 그러니까 '어디까지 하나 한번 보자' 이런 것도 있고 '나에게 이러는 사람 네가 처음이야'도 있었을 거다."
![배우 이설이 영화 '침범'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935엔터테인먼트]](https://image.inews24.com/v1/a6dc298fbb2197.jpg)
- 엔딩도 충격적이었다.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장면인데 어떻게 해석했나? 해영은 어떻게 됐을까?
"저는 사실 죽었다고 생각하고 했다. 자기가 꿈에도 그리던 엄마를 만났는데, 그 안에 있던 더 큰 증오로 원망이 컸다. 엄마는 만났는데도 엄마를 그 원망으로 내려친다. 그 안에 진짜 원망이 가득했다고 생각했다. 너무 사랑받고 싶은데 안 해주는 것에서 화가 나는 거다. 저는 이게 너무 슬프고 불쌍하고 안쓰럽다. 보시는 분들도 무서운 사이코패스라기보다는 한 번만이라도 안쓰럽다고 생각해주시면 좋겠다."
- '침범'이 좋으면서 나쁘게 느껴진 이유는 해영이 분명 악인으로 그려지는데 그 감정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냥 얘는 나빠'라고 하면서 넘어가면 관객 입장에서는 마음이 편했을 것 같은데 '얘가 이런 심정이었구나' 느끼게 되니 감정 이입을 하게 된다.
"그게 되게 위험한 거긴 한데 저는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다. 악을 이해해야 대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악으로부터 보호하려면 상대를 알아야 싸울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는 좋은 영화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 '침범'이 이설 배우에게 엄청난 의미의 작품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지점에서 큰 재미를 느꼈나?
"독립영화나 '방법' 등 전작에서 늘 약자거나 사투리를 쓰거나 외국인이었다. 그런데 해영이는 참지 않는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표출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제 안에 뭔가가 쌓여 있었나 보다. 그래서 디톡스한 것 같다."
- 이번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크게 느껴진다. 굉장히 디테일하게 상황을 생각하고 상상하면서 접근하는 것 같은데, 늘 그런 편인가?
"사실 이렇게까지 생각한 건 처음인 것 같다. 제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본능적으로 연기하고 싶다는 느낌을 진짜 강하게 받았었고,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했던 것 같다. 그즈음에 '내가 이 일을 계속해도 되나?'라는 생각을 한창 할 때 '침범'을 만났다. 그래서 한번 하얗게 불태우자는 마음으로 했던 것 같다."
![배우 이설이 영화 '침범'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935엔터테인먼트]](https://image.inews24.com/v1/77da73d8696838.jpg)
- 그 마음으로 임한 후 만족감은 어떤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지 않나. 저는 분명히 불태웠다고, 다 소진했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가면 '이거 한 번만 더 해볼걸' 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이 일을 되게 좋아하는구나', '나는 쉽게 포기 못 하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침범'은 내가 배우라는 직업을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걸 다시 알려 준 작품이다."
- 작품을 꾸준히 하고 있었는데 왜 '이 일을 계속해도 되나'라는 생각을 했나?
"자신감이 없는 것 같다. 스스로를 믿고 자신 있게 해야 하는데 너무 잘하는 분들도 많다 보니 저 스스로 되게 작아졌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작아지더라."
- 이설이 배우로서 보여주고 싶은 모습은 무엇인가?
"너무 많다. 사극, 판타지, 로코 다 하고 싶다. 모든 배우가 그러실 텐데 '얘 나오네? 봐야지'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게 제 소원이다. 이 사람 나오면 그냥 봐야지 하는 배우가 있지 않나. 그런 배우가 되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주연이 아니더라도 실감 나는 이야기꾼이 되고 싶다. 그게 꿈이다."
/박진영 기자(neat2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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